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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릉(東九陵)은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로 197에 위치하는 조선 시대의 왕릉군(王陵群)이다. 동구릉은 사적 제19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191만 5891㎡에 달하는 구역에는 9개의 능에 17위의 유택(幽宅)이 있고, 2009년 2월 27일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세계유산 조선왕릉은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능(40기)으로 우리의 전통적인 문화를 담은 독특한 건축양식과 아름다운 자연이 어우러진 신성한 공간이며, 지금까지도 이곳에 제례(祭禮)가 이어져 내려오는 살아있는 문화유산이다.
동구릉 입구의 홍살문은 왕릉의 들머리임을 알려주는 건축적 장치로 이곳을 지날 때는 몸과 마음가짐을 엄숙히 하고, 여기에 모셔진 분들에게 경건한 예를 갖추라는 뜻으로 세워진 것이다. 두 개의 기둥으로 만들어지며 문짝을 달지 않는 상징적인 문이다. 홍전문(紅箭門)이라고도 한다. 모두 붉은색 주칠(朱漆)을 하는데, 그래서 홍살문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동구릉에는 안쪽에 아홉곳의 능마다 약간 작은 규모의 홍살문이 설치되어 산릉의 참배나 제례가 시작되는 곳임을 다시 한번 알려주고 있다. 홍살문 앞에는 대개 하마비(下馬碑)를 세운다. 아무리 지체 높은 사람도 홍살문 앞에서부터는 말에서 내려 걸어 들어가란 뜻이다.
'왕의 숲 가는 길'이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이곳은 자연학습 약1.3Km 구간으로 '모이는 곳'에서 출발하여 동그라미 교실-> 네모교실-> 숲속의 연못-> 모래 놀이터-> 맑은물 교실-> 통나무 건너기로 7개의 코스로 구성되어 있다. 숲길개방은 휘릉에서 원릉까지 1.4Km, 경릉에서 자연학습장까지 1.3Km로 5.16일부터 6.30일까지(매주 월요일 휴관) 09:00 ~ 17:00 개방한다. 조용하고 쾌적한 숲길을 따라 피톤치드를 마시며 약 1시간 정도 걷는 길이다.
9능의 첫번째 능인 건원릉(健元陵)은 조선1대 왕인 태조 이성계의 능이다. 태조(1335~1408, 재위 1392~ 1398)는 고려말의 뛰어난 장군으로 공민왕때부터 여러차례 공을 세웠다. 1392년 신진사대부의 추대로 개경 수창궁에서 왕위에 올랐다. 재위기간 동안 한양을 수도로 정하고, 나라의 이름을 조선으로 정하는 등 조선왕조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대한제국 선포 후 1899년(광무3년) 황제로 추존되었다. 이 능의 조성형식은 후대 조선왕릉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두번째 왕릉은 현릉(顯陵)으로 조선 5대왕 문종과 현덕왕후의 능이다. 문종(1414~1452, 재위 1450~ 1452)은 세종과 소헌왕후의 아들로 8세에 왕세자로 책봉된 후 아버지 세종을 도와 정치 실무를 익혔다. 재위기간 동안 고려사, 고려사절요 등의 역사서를 편찬하였고 군사제도를 정비하였다. 현덕황후 권씨(1418 ~ 1441)는 화산부원군 권전의 딸로 1431년(세종13년) 왕세자였던 문종의 후궁의 되었고, 1437년(세종19년)에 왕세자빈으로 책봉되어 단종을 낳고 곧바로 세상을 떠났다. 문종이 왕위에 오르자 단종의 생모인 권씨는 왕후로 추존되었다.
세번째 왕릉인 목릉(穆陵)은 조선 14대 선조와 첫번째 왕비 의인왕후, 두번째 왕비 인목왕후의 능이다. 선조(1552 ~ 1608, 재위 1567 ~ 1608)는 중종의 손자이자 덕흥대원군의 아들이다. 재위기간 동안 일본으로부터 두차례 침략( 임진왜란(壬辰倭亂) 정유재란(丁酉再亂) )을 당해 사회적으로 큰 혼란을 겪었으나 이황(李滉)과 이이(李珥) 등 유학자들을 많이 배출하기도 하였다. 의인왕후 박씨(1555 ~ 1600)는 반성부원군 박응순의 딸로 1569년 왕비로 책봉되었으나 선조와의 사이에서 자식을 낳지 못했다. 인목왕후 김씨(1584 ~ 1632)는 연흥부원군 김제남의 딸로 1602년 왕비로 책봉되었다.
구릉 중 네번째 능인 휘릉(徽陵)은 조선16대 인조의 두번째 왕비 장렬왕후의 능이다. 장렬왕후 조씨(1624 ~ 1688)는 한원부원군 조창원의 딸로 1638년 왕비로 책봉되었다. 현종 재위기간에 있었던 예송논쟁(禮訟論爭 : 효종과 인선왕후가 세상을 떠났을때 어머니가 되는 장렬왕후의 상복 입는 기간을 두고 서인(西人)과 남인(南人)이 대립한 사건)의 중심인물이기도 하였다.
다섯번째 능은 숭릉(崇陵)으로 조선 18대 현종과 명성왕후의 능이다. 현종(1641 ~ 1674, 재위 1659 ~ 1674)은 효종과 인선왕후의 아들로 역대 조선 국왕 중 유일하게 외국(청나라 심양)에서 태어났다. 재위기간 동안 군사력 강화에 힘쓰고 호남지역에서 대동법을 실시하여 농업을 발전시키는 등 두차례의 청나라 침략의 피해로 부터 국가체제를 회복하기 위해 힘썼다. 명성왕후 김씨(1642 ~ 1683)는 청풍부원군 김우명의 딸로 1651년 왕세자빈이 되었고 현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로 책봉되었다.
여섯번째는 혜릉(惠陵)으로 조선 20대 경종의 첫번째 왕비 단의왕후의 능이다. 단의왕후 심씨(1686 ~ 1718)는 청은부원군 심호의 딸로 1696년에 왕세자비가 되었으나, 경종이 즉위하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혜릉은 처음 왕세자빈묘의 형태로 조성되었다가 1720년 경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후로 추존하고 묘를 능으로 올려 혜릉이라 하였다. 1966년 5월 내 인생 최초의 MT장소가 이곳 잔디밭이었기에 지금도 아슴하게 떠오르는 추억의 그날이 아름답다.
일곱번째는 원릉(元陵)으로 조선 21대 영조와 두번째 왕비 정순왕후의 능이다. 영조(1694 ~ 1776, 재위 1724 ~ 1776)는 숙종과 숙빈 최씨의 아들로 1721년에 왕세자로 책봉되었고, 경종이 세상을 떠나자 왕위에 올랐다. 조선 역대 국왕 중 가장 오래 살았고(83세), 오래 재위하다가(52년) 세상을 떠난 후 묘호를 영종이라 하였다가 1890년(고종27년) 영조로 바꾸었다. 정순왕후 김씨(1745 ~ 1805)는 오흥부원군 김한구의 딸로 1759년 15세의 나이로 당시 66세이던 영조의 두번째 왕비가 되었다. 1800년 순조가 왕위에 오르자 대왕대비의 자격으로 수렴청정을 하였다.
여덟번째 왕릉은 수릉(綏陵)으로 추존 문조와 신정왕후의 능이다. 문조(1809 ~ 1830)는 순원왕후의 아들로 1812년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순조를 대신하여 정사를 보며 세도정치를 견제하기 위해 다양한 인물을 등용하고, 궁중의례를 발전시켰으나, 2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시호를 효명세자라 하였다. 아들 헌종이 즉위한 후 익종으로 추존되고 대한제국 선포후 1899년 황제로 추존되어 묘호를 문조로 바꾸었다. 신정왕후 조씨(1808 ~1890)는 풍은부원군 조만영의 딸로 1819년 왕세자빈이 되었고, 아들 헌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대비가 되었다. 1863년 철종이 자식이 없이 세상을 떠나자 고종을 양자로 입양하여 왕위에 올린 후 수렴청정을 하였다. 이 능 앞에서 "이 나이에 수능을 보러 오다니~" 탄식조로 아재개그를 뱉었다.
아홉번째로 경릉(景陵)은 조선 24대 헌종과 첫번째 왕비 효현황후, 두번째 왕비 효정황후의 능이다. 헌종(1827 ~ 1849, 재위 1834 ~ 1849)은 추존 문조와 신정왕후의 아들로 1834년 8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재위초반은 할머니 순원왕후의 청정을 받았다. 헌종 재위기간은 세도정치로 인해 사회 전반적으로 혼란하였다. 효현왕후 김씨(1828 ~ 1843)는 영흥부원군 김조근의 딸로 1837년 왕비로 책봉되었으나 1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효정왕후 홍씨(1831 ~ 1904)는 익풍부원군 홍재룡의 딸로 1844년 왕비로 책봉되었고 1897년 대한제국 선포 후 태후가 되었다. 헌종과 효현황후, 효정황후는 1908년 황제와 황후로 추존되었다. 삼연릉은 조선왕릉 중에서 유일하며, 오직 동구릉에서만 볼 수 있는 신기한 형식이기도 하다.
숭릉 연지는 1674년 왕과 왕후의 능을 만들 때의 담당 기관인 산릉도감에서 조성한 연못이다. 네모난 형태에 가운데 둥근 섬이 있는 방지원도형으로 네모는 땅을, 둥근 섬은 하늘을 상징하는 우주관과 자연이 담겨 있다. 동구릉 내 9기의 왕릉 가운데 숭릉에만 연지를 두었는데, 이는 동구릉 내에 형성된 3개의 물길(건원릉과 휘릉 사이, 원릉과 경릉 사이. 숭릉과 혜릉 사이)를 관리하기 위해서였다. 연지의 면적은 약 4.941㎡이고, 평균 수심은 약 50cm정도이다 .
소나무가 왕릉을 향하여 신하의 자세인듯 허리를 기울여 단정하게 서 있다. 소나무(Korean red pine)는 우리와 가장 친숙하고 가장 흔한 바늘잎 나무이다. 옛 사람들은 흉년이 들어 먹을거리가 모자라면 소나무 껍질을 볏겨먹고, 꽃가루를 털어 떡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좋은 소나무는 임금님의 나무 널로도 쓰였다. 오랫동안 우리 곁에 가까이 있으면서 쓰임이 많았던 나무지만, 숲이 우거지면서 다른 나무와의 경쟁에 밀리고 재선충을 비롯한 병충해가 많아 이 땅의 소나무는 차츰 줄어들고 있다.
경내안내 표지판에는 (1) 숭릉 (2) 혜릉 (3) 경릉 (4) 원릉 (5) 휘릉 6) 건원릉 (7) 목릉 (8) 현릉 (9) 수릉 (10) 재실 (11) 숭릉 연지 (12) 매표소로 나와 있어서 안내하는 순서대로 번호따라 길을 따라 걷다보니 겹치는 길이 많아 만보계를 쳐다보니 14652가 나온다. 더운날씨에도 아주 쾌적한 숲길로 조선의 능에서 역사 유적을 찾아 많이도 걸었다. 특이한 점은 이리저리로 걸으면서 '동구릉 석조유구'로 표시된 석조등의 유물과 출입금지 표시된 지역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 유뮬이 왜 이 장소에 그냥 이렇게 있는지 궁금하다.
입구의 기와집인 재실(齋室, Tomb Keeper's House)은 평상시 영(令 : 종5품) 또는 참봉(參奉: 종9품)등이 능역을 관리를 위해 근무하는 곳이며, 제례 시에는 제관들이 머무르면서 제례를 준비하는 공간이다. 주요 시설은 집무실인 재실 외에 향(香)을 보관하는 안향청, 제기(祭器)를 보관하는 제기고, 행랑채 등이 있었으며, 단청은 하지 않았다.
동구릉 외금천교 모습이다. 이곳은 신성한 왕릉의 공간과 속세 공간을 구별하는 물길인 금천이 흐르고, 두 영역을 이어주는 돌다리인 금천교와 물길이 흘러드는 연지가 있었다. 동구릉 내 각 왕릉진입 공간의 금천교 및 연지와 구별하여 이를 외금천교, 외연지라고 한다. 외금천교와 외연지의 모습은 1975년에 촬영한 항공사진에도 나타나고 있으나, 이후 동구릉 입구를 지나는 43번 국도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철거되었다. 당시 해체된 채 동구릉 경내에 보관되어 온 외금천교의 부재를 분석한 결과, 외금천교는 하부가 무지개 모양의 아치로 이루어진 홍예교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외금천교의 원래 자리에는 현재 도로가 지나고 있어 다리를 본래 모습으로 복원할 수는 없으나, 부재의 일부를 사용하여 홍예교 모양을 복원하여 이렇게 전시하였다.
화장실에는 커다란 모니터가 설치되어 있으며 동구릉의 전 구역에 대한 모습을 자세히 설명하며 안내하고 있다. 대한민국 최대의 왕릉군인 동구릉은 왕릉에 들어가는 입구와 그 사이사이로 많은 숲길이 있다. 평범해보이는 매표소와 홍살문으로 지나 갈참나무와 소나무로 이루어진 숲을 지나가면 재실이 나타나는데, 이곳에 9곳의 왕릉으로 가는 갈림길들이 있다. 9기나 되는 왕릉의 사이사이를 연결하는 순환로를 그대로 따라 돌기만 해도 거뜬하게 한두시간 정도 역사공부하며 재밋고 건강한 삼림욕을 즐길 수 있다.
구리시 관광안내도의 구리9경이다. 제1경은 동구릉, 제2경 장자호수공원, 제3경 아차산, 제4경 한강시민공원, 제5경 구리타워, 제6경 곤충생태관, 제7경 구리농수산물도매시장, 제8경 돌다리곱창골목, 제9경은 광개토왕비/동상이다. 경기도의 중앙에 구리시가 있는데, 동쪽은 경기도 남양주시, 서쪽과 남쪽은 서울특별시, 북쪽은 남양주시와 접하고 있다. 남쪽으로 한강의 본류가 흐르고 동쪽으로는 한강의 지류인 왕숙천이 흐른다. 구리시 수택동을 축으로 한 서쪽에는 아차산이 있고, 동북방에는 동구릉이 주산인 구릉산(검암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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