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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군포 반월호수 둘레길

영대디강 2018. 6. 6. 16:57

아내가 병원에서 치료받으면서 절실히 느꼈던 생각이 있답니다. 아프면 왜 큰 병원에서 치료 받아야 하는지 그 이유는, 대형병원에는 굳이 정원이 아니라도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복도라도 길고 넓게 있어서 병실에서 답답하면 좀 나가서 걸을 수가 있는데, 작은 병원은 조밀하여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다는 걸 깨달았답니다. 수술 후 벌써 3주차 갇힌 가슴을 좀 열어 주려고 둘이서 군포 반월저수지 둘레길을 걸었습니다. 

지난 가을에 우리가 여길 찾았을 땐 산아래 데크로 만든 길에 나뭇그늘이 드리워져 있어서 그 기억만을 추억하며 최적의 장소로 반월호수를 선택했습니다. 그늘이 계절따라 시간따라 바뀜을 예측하지 못한 판단착오였죠. 유월이지만 아직은 바람이 서늘하여 걷기에 딱 좋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나이든 여인들에게 유월의 햇볕은 작은 양산으로라도 가려야되는 기피대상으로 여겨지나 봅니다.

비록 오른팔을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불편함이 있긴하지만, 건강한 두 다리가 있어 이렇게 풍경 좋은 곳에 맘 놓고 걸어 다닐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 조건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해 줍니다. 내가 갖지 못한 것들에 대한 불만보다는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정말 마음속 깊이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며 우리는 평소처럼 말 없이 그냥 걷기만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남들과 비교하길 좋아 합니다.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호수주변을 걷고 있음에도 그들은 누구랄것 없이 모두 서로 대화하며 하하호호 즐겁게 웃으면서 걷는다는 겁니다. 그러나 환자와 간병인 관계인 우리 두사람은 부부싸움 끝에 집을 나선 사람들처럼 굳은 표정으로 침묵이 금이라며 그저 앞만을 바라보며 걸어야 하는 그 모습이 나는 너무 싫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아내를 웃겨볼 요량으로 말을 붙여 봅니다. "오늘 두찌네는 나윤이 숙제 땜에 강화도 전등사엘 간다며?" 예상대로 응답은 없습니다. "그럼... 강화도에는 유명한 특산물이 뭐가 있을까?" 나를 힐끗 바라보며 "그야 뭐, 강화인삼이나 순무 뭐 그런거 겠지?" 예상대로 끌려 옵니다. "에이!~~ 아니징~~~ 강화도 하면... 뭐니뭐니 해도... 강화유리나 강화프라스틱이 특산품아닐까?"

벌써 두바퀴째 걷던 걸음을 멈추고 아내는 털썩~ 조경석위에 주저 앉아 버립니다. 평소에도 늘 아내는 나에게 꼭 필요한 말만하라고 수십년 동안 주의를 줬지만 마이동풍 이었지요. 그런 이유로 또 맥빠져 주저 앉고 싶었나 봅니다. 아내는 쓸데없는 말을 싫어 합니다. 입원했던 병원에서도 문병을 했던 아내의 친지들의 하나같은 이야기는 "손주를 많이 돌봐서.... " 였답니다. 그것이 사실 일 수도 있지만, 아내는 그건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왜 남의 사정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하는지 모르겠다는 겁니다.

두바퀴를 돌고나니 점심시간이 되더군요. 호숫가에 있는 초계국수 집으로 올라가 국수와 메밀전병을 주문하여 후루룩~ 먹고나서 몇시냐고 묻기에 이제 열두시 쯤이라고 하니까 아내는 또 한바퀴를 더 돌잡니다. 호수 둘레길이 3.4킬로미터니까 6.8을 걸었음에도 아직은 만보도 안된다며 더 걸어야 한답니다. 우린 그렇게 또 아무 말 없이 화가 난 사람들처럼 땡볕아래서 호숫길 세바퀴로 10킬로미터를 걸었습니다.

간병인은 오늘도 환자가 행복한 하루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걸으면서 나는 생각했습니다. 오늘이 바로 현충일... 너는 나라를 위하여 무엇을 했느냐라고 호국영령들이 나에게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까를 자문자답하였습니다. "저는요, 칠십평생을 살면서 젊은 날 36개월간을 국방의무로 온전히 조국 방패되어 자신을 바쳤던 그 기억밖엔 없습니다." 글구요...내 자신과 가족을 위하여는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

혹시라도 현충원에 계신 호국영령들이 "이렇게 얼빠진 자손들을 위해 목숨을 바쳐 이나라를 지켰나?"라는 탄식이 나오지 않도록, 자손대대로 이 땅에 태어나서 행복하고 감사하다는 맘을 먹으며 그렇게 내가 사는 날까지는 건강하게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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