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

급성충수염

영대디강 2024. 1. 14. 05:03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데 나에겐 농사를 짓는 사촌도 없을뿐만 아니라, 내 주변 가까운 사람들이 잘되는 모습을 시샘할 그런 나이도 역시 아니다. 그럼에도 밤새 콕콕 쥐어짜는 배아픔에 시달리다가 잠을 설치고 집근처 병원문을 열자마자 접수하여 아픈증상을 이야기 했더니, 맹장염이 의심되다면서 CT촬영을 하고 오란다. CT에 나타난 내 속병을 모두 자세하게 설명해준다. 급성충수염이 확실하고 장염도 조금 증상이 보이며, 담낭에도 작은 용종이 있고, 간에도 3센티의 물혹이 있단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겉과 속이 다른 이중인격인 나를 꿰뚫어 보는듯 겉은 멀쩡했어도 속이 완전 종합병원이랬다. 관리를 위해 일부러 노력하지는 않았어도 그렇게 오랜 세월동안을 별스런 고장없이 잘 썼는데 아무런 이상이 없을 수가 있겠는가? 급성충수염은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뱃속에서 터질수가 있으니 오늘 중으로 큰병원에 가서 수술하라며 소견서를 써준다. 정말 좋은 운으로 태어나서 건강을 포함하여 매사 어려움 없이 무탈하게 살아온 77년의 세월이 2024년을 맞아 한순간에 무병Stop으로 경고가 떴다.  

이웃 대형종합병원으로 옮겨서 곧바로 입원수속을 하고 병실을 배정 받은 후 오후 3시에 전신마취 후 급성충수염 수술에 들어갔다. 충수염() 충수에 생기는 염증으로, 많은 사람들에게는 주로 널리 맹장염(盲腸炎)으로 알려져 있으나 맹장(Cecum) 염증이 생기는 병은 따로 존재한다. 따라서 충수염은 맹장염(Cecitis) 다르다고 있고, 틀린 표현이란다. 그러나 워낙 실제 맹장염(Cecitis) 빈도가 적고 충수염(Appendicitis) 맹장염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너무 많아서 의사들도 맹장염이라고 하면 그렇게 알아 듣는단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에서는 맹장염과 충수염 단어가 혼재되어 있다. 의료 관련 종사자(특히 의사들)끼리는 Appendicitis 줄여서 '아뻬', '압뻬'정도로 발음한다.

충수염 환자의 95% 이상은 복통(주로 右下腹部)을 느낀단다. 약 80% 정도에게 구토, 식욕 부진, 오심, 국소적인 복부 압통, 발열이 나타난단다. 복통의 경우 초기에 상복부 통증이 모호하게 느껴지다가 점차 우측 하복부에 국한되어 발생한단다. 과거에는 다른 질병에 비해 상당히 흔하게 발생하면서도 사람들에게 매우 치명적인 질병이어서, 인류 수명 단축의 주요 원인이었으나 충수 절제 수술이 나온 뒤에는 손쉽게 해결할 있게 되었단다. 충수염 수술은 인류 평균수명을 가장 단기간에 끌어올린 대표적인 수술이란다. 수많은 사람들이 충수염때문에 요절했었지만, 위생관리와 항생제 치료를 동반한 질환의 수술에 성공하면서 인류 평균수명이 대폭 상승하였단다.

가는날이 바로 장날이라고, 내가 입원한 그 다음날이 바로 손주들과 예약된 양평의 리조트에서 2박3일 함께 보내기로 일정이 잡힌 날이다. 요즘은 겨울방학(Winter break / 冬期放學) 기간이 학교마다 달라서 일곱명의 손주들이 모두 모이기가 어려운 모임에도 나는 이런 돌발사건을 만나 결석이다. 복강경으로 맹장꼬리를 잘라내고 묶어주는 잠깐동안의 충수염 수술을 마치고, 고독이 감싸고 휘돌아 무심한 듯 조용한 병실에 홀로 누워서 손주들 노는 모습을 찍어 사진으로 아내가 보내주는 카톡 창을 바라본다. 이런 저런 체험활동으로 아이들이 즐겁게 노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냥 나도 모르게 미소가 저절로 솟는다. 용문산관광지와 양떼목장 그리고 곤충박물관 등을 찾아다니며 함께 어울려 노는 모습들이 너무 이쁘기만 하다. 지금 내가 있어야 할 곳이 바로 사랑과 낭만이 흐르는 손주들과 함께하는 그곳인데, 나는 왜 이렇게 홀로 고독을 질겅거리며 씹고 아픈 뱃살을 참아내며 누워 있어야 하는건지 인생의 무상함을 생각하게 된다. 

세상살이를 오랜세월 동안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일하고 착실하게 살아왔지만, 한평생을 그렇게 열심히 살아서 지금까지 뭘 이뤄놨느냐고 한마디로 누가 묻는다면 아무것도 대답할게 없었다. 청춘을 보낸 공직생활, 구멍가게 벤처기업으로 육백칠십명의 일자리를 제공했던 기억, 엔지니어로 살아왔던 반백년의 세월도 잠깐 떠오르긴 하고, 그러나 이웃 자선단체에 작은 손길의 정성도 스치듯 아물거려야 하는데 별로 떠오르지 않는다. 정말 내세울게 없는 삶이다. 이제 지금의 내게 유일하게 남아있는 자산이라곤 저렇게 잘생긴 일곱명의 손주들 뿐이다. 냉정한 성격이라서 다정함이 없는 사람임에도, 이리봐도 예쁘고 저리 보아도 사랑스러운 손주들 모습을 바라만봐도 웃음이 번져난다. 너는 살면서 뭘 했느냐는 물음에도 이제는 자신있게 확실한 감사로 대답 할 수 있다. 나에겐 일곱명의 손주들이 있다고~. 

장기자랑과 보물찾기 등의 게임에서 받은 상금을 들고 모여서 사진을 찍었단다. 이 아이들이 각자 가족단위로 우리집에 방문할 때는 항상 브래드이발소나 흔한남매등의 TV프로그램을 보거나 각자 들고 온 태블릿으로 게임을 하거나 영상을 바라보는 시간으로 혼자서 노는게 일상이다. 학교와 학원으로 시간에 맞춰 살다보니 비록 사촌지간이지만 아이들이 함께 모여서 서로 교감할 수 있는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 더우기 중학생 누나들과 초등생 남동생들이 노는 방식이 서로 다르고 취미가 잘 맞지 않음에도 이렇게 서로 양보하며 함께 어울리는 가족의 모습이 너무 고맙다. 아파트에서 사는 아이들이 뛰어 놀기에 너무 좋은 이곳은 3층 건물의 독립 공간이라서, 넓은 울안 수영장까지 맘대로 쓰며 우르릉 꽝꽝~ 1층에서 부터 3층까지 달음박질을 하는데도 신경하나 쓸게없이 너무 좋은 공간이라 최고의 놀이공간 모습이 보인다.   

언제 보아도 모두 이쁘고 잘 생겼다. 요즘 매스컴에서 만나는 뉴스 중에서 우리나라를 지킬 군대의 병력이 너무 줄어서 2040년에는 약35만의 병력이 국토의 동서남북 사면을 모두 지켜내야 한다는, 내나라를 지켜야하는 병력이 줄어서 어쩔 수 없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린다. 지금도 군 입대인력이 줄어서 신병훈련소가 여러곳 없어지고, 군부대가 통폐합으로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이기자부대 등 전통을 가진 사단들이 없어지는 등으로 병력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단다. 이 뉴스를 보면서 내게는 다섯손자들이 이렇게 잘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에 국토방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맘으로 벅차게 가슴이 따뜻해진다. 나는 이제 언제라도 이 땅에서 태어나 살아온 백성으로의 삶에 감사하면서 조용히 사라져가야 하지만, 다가오는 내일이 내 손자들의 헌신으로 주변국보다 우위의 방위력을 가지게 될 것으로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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