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매헌시민의숲(瑞草)

영대디강 2024. 3. 3. 04:33

서울특별시 서초구 양재동에 위치한 시립공원인 양재시민의 숲은 1980년대 개포 토지구획 정리사업의 일부로 이곳에 부지가 확보되고,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대회를 위하여 도시미관을 살리고 쾌적한 휴식공간을 재공하고자 1986 11월 30일에 공원으로 개장하였다. 시민의숲은 우리나라최초로 공원에 개념을 도입하여 도심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울창한 수림대를 형성하였으며, 느티나무, 단풍나무, 감나무, 모과나무 등 다양한 수목과 산책로 등이 조성되어 있어서 풍성한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

양재 시민의숲의 또다른 이름은 매헌 시민의숲이라고 부른다. 이곳에는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과 동상이 있어서 매헌교·매헌초·매헌로  주변 주요 시설의 명칭이 모두 매헌이다. 매헌로를 기준으로 북측 구역에는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 바닥분수, 어린이놀이터 등이 있으며,  남측 구역에는 유격 백마부대 충혼탑과 1987 미얀마 안다만해협 상공에서 북한의 테러로 폭파된 대한항공 858편의 위령탑, 1995 삼풍백화점 붕괴로 사망한 희생자와 유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위령탑, 우면산 산사태 희생자 추모비 등이 있다. 

이곳의 면적은 총 258,991이며, 그 중 서울시의 관리 구역이 178,635, 서초구의 관리(문화예술공원) 구역이 80,356㎡로 나뉜다. 이곳의 조성목적은  86아시안 게임과 88올림픽을 앞두고 당시 서울의 관문이었던 양재 톨게이트 주변 환경을 개선하고자 함이었다. 주요시설은 조경시설로 잔디광장, 파고라가 있으며, 정자 및 운동시설은 배구장(족구장 겸용), 농구장, 테니스장 등과 편의시설인 매점, 음수대, 화장실 5개소 예식장, 윤봉길의사 기념관, 윤봉길의사 동상, 백마부대 충혼탑, 대한항공 858 위령탑, 삼풍백화점 희생자 위령탑, 우면산 산사태 희생자 추모비 등이 이곳에 있다. 

이공원은 시립공원이지만, 그동안 소유주는 서초구청이었다. 이런 사실은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서 서울시에서 서초구로 소유권이 착오로 이관된 탓이었다. 이로 인해 무상양도 되어야 하는 서초구청사가 서울시에서 서초구로 재산이 이관되지 못했다. 서초구청은 그동안 서울시 재산이였던거... 바람에 서초구는 시가 5천억원으로 예상되는 서초구청 부지와 건물을 무상양도 받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 해당 공원을 서울시에 다시 돌려주는 재산교환으로 구청사를 무상양도받았다고 전한다.

2022 10 13, 서울시가 양재시민의숲의 명칭을 '매헌시민의숲'으로 변경했다고 밝혔다. 명칭변경 사유로는 "시민의숲 안에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이 있고, 매헌교·매헌초·매헌로 주변 주요 시설의 명칭과 일관성을 갖추기 위해 명칭을 변경했다" 설명했다. 또한 서울시가 공원 명칭 변경을 위해 주민과 공원 이용객 4,35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매헌시민의숲' 78.6% 동의를 얻었다. 이에 서초구 서울시 지명위원회을 거쳐 국가지명위원회에 안건을 상정했고 국가지명위원회는 2022년 10월 23 명칭을 최종 고시했다. 서울시는 향후 국토정보플랫폼 국토정보맵, 포털에 기재된 시민의숲 명칭을 '매헌시민의숲'으로 바꾸고 공원 각종 안내시설도 이름에 맞춰 정비할 계획이란다.

매헌 윤봉길(梅軒 尹奉吉) 의사義士(1908.06.21 ~ 2932.12.19)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농촌계몽운동을 통한 국력배양을, 중국으로 망명하여서는 백범 김구 선생이 지휘하는 한인애국단에 가입하여 특공작전을 감행할 것을 자원하였다. 의사께서 단신으로 1932 4 29일에 중국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열린 일본의 전승 기념식 단상에 폭탄을 던진 상하이 의거는 상하이 주둔 일본군 총사령관 등 문무수괴 7명을 사상케하여 일본군에 큰 타격을 줌으로써 전의를 상실케하였으며, 우리민족의 자주독립정신과 항일투쟁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고 우리의 독립의지를 더욱 다지게한 전기를 마련하였다.

시가물색어중용(詩家物色語從容) : 시 짓는 사람은 본래 말이 없는데/ 울타리 국화 노래지고 뜰의 나무 붉어지네/ 예로부터 비록 사람 얼굴 다르다지만/ 지금 내 마음과 같은 사람 몇이나 될까/ 강산은 가을바람 지난 후 잎 떨궈 쉬고/ 천지는 새벽 달 속에서도 맑고 밝다네/ 잠 못 드는 좋은 밤에 무한한 흥에 겨워/ 동이술에 서로 취해 영웅호걸 자처하네// - 윤봉길 의사의 한시집(漢詩集)중에서.

초가지붕으로 노오랗게 볏집으로 단정하게 이엉을 얹은 정자 마루에 걸터앉아 잠시 순국선열을 생각해 본다. 그 분들이 목숨을 바쳐 쟁취한 독립국가의 후손으로 살면서 나는 이나라를 위해 무엇을 하였는가? 헌법에 규정한 국민의 4대의무를 다하긴 했지만, 그래도 삶에서 온전히 몸과 맘을 국가에 의탁했던 국방의무 3년 밖에 기억나는게 없다. 이 나라에서 태어나 한평생을 살았으면서도 내나라를 위해 살았다는 자부심의 시간이 겨우 삼년이라니 좁은 맘이 너무 춥다. 어제가 3.1절이라서 그런지 3월2일 임에도 날씨가 영하 8도를 가리킬 만큼 한겨울 날씨와 겹쳐 매섭게 더 춥다. 

시민의 숲 산책코스로 북측 출입구에서  한번 돌아들면 1.2Km이고, 남측 출입구 한번돌아들면 0.65Km로 북측과 남측을 모두 걷는 산책로가 1.85Km로 약 30분 남짓이 모두이다. 만보를 걷기위한 목적으로 이곳을 찾은 내겐 너무 짧은 거리라서 조금 아쉽지만, 이곳 매헌시민의 숲은 공원이용객의 안전한 이용을 위하여 2013년 범죄예방환경설계(CPTED)공원으로 선정하여 안전시스템을 구축하여 운영되고 있단다

만보걷기를 목표로 정하고 표지판에서 안내하는대로 징검다리를 건너 양재천 산책로에 내려섰다. 양재천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와 자전거길이 색으로 구분하며 길게 뻗어 있다. 맑은 물이 흐르는 양재천 개울안에는 한가로이 노니는 철새들의 움직임이 바쁘다. 아직은 봄이 오려는 삼월의 초입이라서 누렇게 마른 풀과 헐벗은 나무들만 보이지만, 봄이 찾아오면 초록과 풍성함이 넘치는 곳으로 탈바꿈할 것이다

양재천 4.14Km 서초구안내도를 보면서 양재천을 가로지른 영동1교, 영동2교, 영동3교를 바라보며 걷는다. 양재천은 관악산에서 발원해 과천 구간을 거쳐 서울 서초구와 강남구를 지나 탄천으로 합류하는 하천이다. 과천시와 서초구 및 강남구를 지나는 총 하천연장 18.5km에 달하는 양재천의 원래 이름은 공수천( 또는 )이었는데 이제는 인근 지명만이 옛 물길을 짐작케 한다. 양재천 물길 위 여울이 형성되는 곳에 백로가 날아들었다는 ‘학여울(학탄:), 대치동 미도아파트 부근에 있던 포구()의 흔적 ‘개포동()’ 등이 그것이다개포동에 살면서 강남역까지 걸어서 출퇴근하면서도 콧노래를 부르며 즐거웠던 그 시절의 젊음이 30년전의 기억속에 묻혀 있어도 새록새록 떠 오르는 아름다운 추억이다. 

"칸트, 언덕을 오르다"라는 동상 작품이 앉아있는 계단의 철학자 옆에 나란히 같은 자세로 앞을 바라본다. 이마누엘 칸트( Immanuel Kant, 1724 4 22 ~ 1804 212) 근대 계몽주의를 정점에 올려놓았고 독일 관념철학의 기반을 확립한 프로이센의 철학자이다. 칸트는 21세기의 철학에까지 영향을 새롭고도 넓은 철학적 관점을 창조했다. 칸트의 아버지는 가난한 기술자였고 자녀가 아홉명이었기 때문에, 칸트의 교육비를 후원할만한 환경이 아니었던 그에게 신학교 교수인 프란츠 알베르트 슐츠(Franz Albert Schulz) 도움을 주었다. 슐츠는 독일의 계몽주의 철학자 크리스티안 볼프의 제자이었다. 

나무판에 새겨 놓은 임마누엘 칸트(1724~ 1804)의 명언이 보인다. "한가지 뜻을 세우고, 그 길로 가라. 잘못도 있으리라. 실패도 있으리라. 그러나 다시 일어나서 앞으로 나아가라. 반드시 빛이 그대를 맞이할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가 왜 서울 양재천까지 찾아왔는지 그 이유를 짐작할것 같은 계몽주의 귀감이다.  

산책로의 중간길 모습이다. 하천과 동행하며 좌우로 뻗은 산책로는 높낮이가 다른 세 개의 길로 조성되어 있다. 개울 옆 가장 낮은 길은 자전거도로와 보행자도로, 그보다 높은 위치의 길들은 보행자만을 위한 길이다. 특히 자전거도로는 과천에서 시작해 서울시 서초구와 강남구를 지나 탄천 자전거도로와 이어지기 때문에 자전거 마니아들이 선호하는 길이란다. 보행자를 위한 두 개의 길은 높이가 다른 만큼 걷는 느낌 또한 다르다. 가장 높은 길은 양재천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그보다 낮은 길은 장미터널도 만들어 놓았고 풀과 나무가 우거져 있어 포근한 느낌이다. 띄엄띄엄 놓여 있는 징검돌을 건너 양재천 양쪽 산책로를 오가는 경험 또한 도시 속 하천의 색다른 묘미이다.

경기도 과천과 서울 남부(서초구와 강남구)를 지나는 양재천은 강남권 개발이라는 소용돌이의 한가운데 놓여 있었다. 이곳이 한때는 물고기 한 마리 살지 못하는 ‘죽음의 하천’으로 곤욕을 치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현재 양재천은 250여 종 동식물의 보금자리이자 하루 평균 1만 여 명의 시민이 건강하게 애용하는 생명의 하천으로 거듭났다. 멀리로 롯데타워가 보이는 양재천 물길을 따라 차분한 발걸음으로 한발한발 옮겨 걷다보니 만보계에는 벌써 8천보가 조금 넘는다고 찍혔다.

시민의숲 주차장으로 돌아가기위해 반대편 산책로로 들아든다. 하천변 둔치에는 체육시설, 휴식 공간, 산책로, 자전거 도로, 돌다리를 조성하였다. 나무와 풀을 심어 생태공원으로 거듭났다. 그 결과, 홍수를 예방하고 하천변에 그늘이 생겨 수온이 적절하게 조절되고 있다. 또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물고기와 새들이 목격되고 있으며 조류가 서식하면서 하천 생태계의 먹이사슬이 복원되고, 시민들의 휴식처로 사랑을 받고 있다. 조명등도 잘 설치되어 있어서 야간에도 걷기 좋으며, 곳곳에 마련된 화장실도 쾌적하다.

논과 밭 사이를 구불구불 흐르던 양재천은 1970년대 주변 지역의 개발로 오염되기 시작하여 악취를 풍기는 죽음의 하천으로 변해 갔으며, 산업화 및 도시화와 생태 환경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물고기가 살 수 없을 정도로 수질이 악화되었다. 그 결과 일부 구간은 복개(覆蓋)되어 공원과 주차장으로 이용되었다. 그러나 1995년 양재천 복원 사업이 추진되어 수질정화시설 설치, 자연형 하천 정비, 공원화 사업, 생태 공원 조성 등이 이루어졌으며, 지금은 생태계가 완전 회복되었다. 지금의 양재천은 다양한 동식물의 서식처이자 시민들의 산책로가 되었으며, 여름철 물놀이터 및 생태 학습장의 역할도 하고 있다.

강남 개발에 의해 이곳이 개발되기 이전에는 현재 강남구 대치동 미도아파트 부근에 포구(浦口) 있었다고 한다. 현재 포구(浦口) 흔적은 없으며 개포동(開浦洞)이라는 지역 명칭으로만 남아있다. 개포동 개발 전에는 양재천의 영향으로 갯벌이었다. 하지만 갯벌을 개간해 사람이 있다고 해서 ·물가 포의 개포동이 것이다. 1970년대 이전에는 한강으로 직접 흘러들었고, 70년대 수로변경공사를 하면서 송파강 메우고 송파강의 일부 구간이 탄천 속하게 되면서 양재천은 탄천 지류가 되었다.

이렇게 잘 정비된 하천은 생물종의 다양성이 확보되고, 하천의 자정 능력이 향상되어 자체적으로 수질이 향상될 수 있으며, 하천 주변에 녹지 공간이 조성되어 주민들에게 친근한 환경을 제공할 수 있게 된다. 이곳의 전설에 의하면 마리의 용이 승천하는 것을 인근을 지나가던 임신한 여성이 보고 크게 놀라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마리가 떨어져 죽고 아홉 마리만 하늘로 승천했는데, 죽은 용이 있던 자리가 양재천(良才川) 되고 나머지 아홉 마리가 승천하며 지낸 자리가 구룡산 되었다고 한다. ㅎㅎ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월수목원(水原)  (82) 2024.03.17
쌍봉산둘레길(華城)  (86) 2024.03.10
비봉습지공원(華城)  (80) 2024.02.18
자유공원(安養)  (78) 2024.02.13
상동호수공원(富川)  (84) 2024.02.04